
고창은 조선 전기의 윤회(尹淮, 1380~1436)나 후기의 황윤석(黃胤錫, 1729~1791)과 같은 걸출한 유학자가 배출되기도 했다. 구슬도 완전하고 거위도 구한 ‘멱주완아(覓珠完鵝)’ 이야기를 알고 있나. 진주를 삼킨 거위를 살린 윤회 이야기이다. 필자가 초등학교 때 배웠으며 지금도 여러 출판사에서 전래동화로 출판됐다.
윤회는 고창을 본향으로 하는 무송(茂松)윤씨다. 무송윤씨는 대제학이 3인이나 나온 명문가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 문신이다. 자는 청경(淸卿), 호는 청향당(淸香堂), 증조할아버지는 윤택이며, 할아버지는 윤구생이고, 아버지는 윤소종이다.
집현전이 설치되자 1422년 부제학으로 임명되고 다시 예문제학, 대제학이 됐다. 술을 즐겨, 태종과 세종이 “너는 총명하고 똑똑한 사람인데, 술 마시기를 도에 넘치게 하는 것이 너의 결점이다. 이제부터 양전(兩殿)에서 하사하는 술 이외에는 과음하지 말라”며 여러 차례 타일렀으나 그치지 못했다. 그의 재능을 아낀 세종대왕은 건강을 염려하여 술을 석 잔 이상 못 마시게 하였는데, 연회 때마다 큰 놋쇠 그릇으로 석 잔씩을 마셨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그는 깊은 학식과 인본주의, 생명존중의 사상을 갖춘 휴머니스트였다. 윤회가 젊은 시절 시골 마을에 갈 일이 있었다.
저녁에 여관에 투숙하려니 주인이 숙박을 허락하지 않아 뜰 옆에 앉아 있었다. 주인집 아이가 커다란 진주를 가지고 밖으로 나와 마당 가운데 떨어뜨리니 옆에 흰 거위가 있다가 곧 삼켜버렸다. 아이는 제대로 부모에게 말도 못 했다. 조금 있으니 주인집 사람이 쫓아 나와 윤회를 붙잡고 구슬을 내놓으라고 야단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윤회는 기가 막혔으나 아무 말 못 하고 오라에 묶여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관가에 데리고 간단다. 윤회는 아무 말 없이 다만, “저 오리를 내 옆에 같이 묶어 두시오” 하고 주인에게 청했다. 참으로 지혜롭고 현명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아침이 되자 오리가 똥을 누니 구슬이 그 속에 섞여 나왔다. 주인은 백배 사죄하고 왜 어제는 아무 말도 안 했느냐고 한다. 이에 윤회가 말했다. “내가 어제 말을 했더라면 아마 당신은 저 오리를 죽여 확인을 했을 것이오” 동물 사랑도 이쯤은 돼야 하겠다. 윤회의 거위사건에서 배울 수 있듯이 상대방을 이해하고 기다려 주는 마음, 그리고 이웃을 배려하고 서로 간에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당장 나에게 불이익처럼 느껴지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판단되면 상대방의 입장이나 사태의 객관적 판단없이 즉각적으로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폭력적 행동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의 사실이 밝혀지고 오해가 풀리는 경우가 많다. 설을 앞두고 모두가 만사형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