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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인문기행] 전북 지명 속 둠벙......김제, 부안, 고창 등 지역마다 고유 지명에 둠벙 풍경 즐비


김제시 금산면 선동리(仙洞里)는 지형이 옥녀가 베를 짜는 형국이라 하여 옥녀리 또는 선동리(仙洞里)라 했다. 남동쪽으로 상두산(象頭山)이 솟아 있고, 상두산에서 발원한 하천의 지류가 흘러 원평천(院坪川)으로 유입된다. 자연마을로는 산수동과 아직동이 있다. 아직동(娥織洞)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베틀에 앉아 베를 짜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근처에는 옥녀직금혈의 명당이 있어 지관들이 명당을 찾으려고 몰려들고 있다. 당산에 있는 수령 300여 년 된 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고, 마을 남쪽에 있는 작은 연못은 갓 시집온 새색시가 우렁이를 잡다 발을 헛디뎌 빠져 죽었다고 하여 각시둠벙이라고 한다.

전북농업기술원(원장 박경숙)이 2018년 5월부터 6월까지 김제시 금산면 선동리에 위치한 둠벙 6지점을 선정, 생물다양성을 조사한 결과, 9강 19목 46과 83속 87종 6,709개체를 확인했다. 전북농업기술원 연구개발국 농업환경과 최선우박사는 "둠벙 개소수를 증가해 조사하면 보다 풍부한 생물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수서동물의 분포를 종별로 보면 곤충강이 79%를 차지하였고, 개체수로 보면 다슬기류, 조개류 등 복족강이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다"고 했다. 이어 "생물군인수서곤충강의 분포 특성을 보면, 종수는 잠자리목 22종, 딱정벌레목 21종, 노린재목 10종이 확인됐다. 수서곤충 중 잠자리목, 딱정벌레목, 노린재목이 78%를 차지하였고, 개체수는 잠자리목과 노린재목이 73%를 차지, 정수성생물로 알려진 개체군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순동은 김제시에 속하는 법정동이다. 마을의 방죽인 소못(소매방죽, 금이제)에 순채가 많이 있어 순동이라고 했다. 소못의 물이 남쪽의 두월천(斗月川)으로 흐르는 평탄지와 그 양쪽에 형성된 구릉지에 마을이 들어서 있다. 소못 북쪽에는 순동지방산업단지와 김제북초등학교[1966년]가 있고, 도로변 올림픽공원에 의견비가 있다. 한우물, 참샘골, 복해동, 맹무덤, 만경거리, 점터, 소못, 한우물방죽, 서낭댕이 등의 옛 지명이 남아 있다.

구암은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에 있는 자연마을이다. 산동리 동쪽에 있는 곰산 아래에는 곰방죽이 있고 그 아래에는 묵은들이 있었는데, 예전 이곳에 큰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을 거쳐 서울로 가던 사람들이 “이곳이 바로 서울이다.”라고 감탄할 만큼 번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큰 마을은 지대가 낮아서 산에서 흘러내리는 흙과 모래가 점차 쌓이자 약 410년 전 사람들이 살던 마을을 버리고 높은 지대인 지금의 구암마을로 옮겼다고 한다. 정당리는 김제시 진봉면에 속하는 법정리다. 정당은 원래 마을 근처에 큰 연못이 있어 다못 또는 다뭇이라 하였는데, 한자로 적는 과정에서 깨끗한 연못(淨塘)으로 바뀌었다김제시 용지면(龍池面)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여러 마을들의 이름에 ‘용(龍)’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연못[池]이 많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부용들은 김제시 백구면 반월리 일대에 있는 농경지를 말한다.부용들의 북쪽으로는 만경강(萬頃江)이 동에서 서로 흐르고 있으며, 인근에 부용천(芙蓉川)이 위치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백구들과 동계들이 이웃하고 있다. 부용들은 만경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는 충적평야로, 만경강을 젖줄로 삼고 있다. 주요 들녘으로는 소의 멍에처럼 생긴 들, 연못이 있는 둠벙배미, 대꼬지들, 한국전쟁 때 난민이 머물렀던 부용정착농원인 새개평 등이 있다. 그리고 이들 들녘의 젖줄인 부용보(芙蓉湺)가 축조되어 있다. 국도 21호선은 동서 방향으로, 국도 26호선은 남북 방향으로 부용들을 지나고 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다 시킨다'는 속담을 모르는 사람은 몇 안될 것이다. '과일 망신은 모과가,둠벙(웅덩이의 사투리) 망신은 미꾸라지가 시킨다'는 속담은 아마도 그 후속편이다. 이는 못난 것일수록 함께 있는 동료나 집단을 망신시키고 불명예를 입힌다는 뜻이다. 부안읍 봉덕리 쟁갈마을은 예부터 길고 긴 칡넝쿨이 서로 어우러져 여름에는 많은 칡잎으로 덮여 푸른 들이 되고, 겨울에는 잎이 다 떨어져 마치 큰 구렁이들 이 서로 얽혀 있듯 해서 장갈(長葛) 혹은 쟁갈(爭葛)이라 불리었다. 그 후 안뜸을 안쟁갈 바깥 뜸을 밧쟁갈이라 명명해 왔으며 그 중간에 늪이 하나 있었던 바, 지금의 쟁갈이방죽인 듯하다. 부안읍 봉덕리 송학마을의 이야기도 전한다. 부안읍에서 방죽이 3곳 있었다. 동쪽에는 덕제(德堤) 서쪽에는 아제(阿堤) 이곳 송학은 괴제(怪堤)라 불리었다. 밤이 되면 도깨비불이 많은 곳이어서 괴이할 괴(怪)를 써서 괴제라 했다. 부안읍 신흥리 삼거마을 동편에는 종자골이라 불리는 논이 있다. 논바닥에 늪(수렁)이 많이 있어 생수가 끊임 없이 나와 항상 논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혹독한 한해가 있어도 논바닥이 마르지 않아 벼생육이 왕성했다고 한다.

고창군 성내면 대흥리 개비골엔 개 무덤 비석과 관련,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대흥리 가비동에 큰 부자가 살았다. 어느 날 큰 부자는 흥덕장에서 친구와 어울려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을 마셨다. 해가 질 무렵에야 귀갓길을 서둘렀던 큰 부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집 앞을 지나 논둑을 둘러보던 중 그만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동네에서 아이들이 불장난을 하다가 불이 논둑에 옮겨 붙어 큰 부자가 위태롭게 되었다. 마침 ‘주황’이라고 부르는 큰 부잣집네 개가 주인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옆 둠벙에서 몸을 적셔 번지는 불을 끄기를 수십 번. 드디어 불은 꺼졌지만 결국 개는 지쳐서 죽고 말았다. 잠에서 깨어난 큰 부자는 개 주황이 자기를 구하다 죽은 것을 알고 몹시 슬퍼하며 충성스런 주황이를 묻어 주고 그 자리에 비석을 세웠다.

고창군 흥덕면 흥덕리(興德里)는 흥덕 읍내가 되므로 흥덕읍내 또는 흥덕이 됐다. 조선 말기 흥덕군 현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흥덕 북쪽에 배풍산(培豊山)이 솟아 있고, 솔아물(일명 효동, 孝洞) 앞에 솔아물방죽(일명 주교제, 舟橋堤, 원양이방죽), 솔청 앞에 솔청방죽이 있다. 솔아물방죽은 조선 말기에 박원양이 쌓았다고 한다. 솔아물방죽 아래쪽, 방죽의 물이 빠지는 배수로 위에는 주교(舟橋)가 놓여 있다. 다리 모양이 문고리처럼 생겼다. 고창군 무장면 덕림리(德林里)는 마을 뒤에 있는 계림산(鷄林山)에서 유래됐다. 처음에는 닭숲으로 부르다가 덕림으로 개칭됐다. 방죽안 앞 골짜기에 각골(각동, 角洞)이라는 들이 펼쳐져 있다. 방죽안 지형이 소가 누운 형국인데 각골은 그 소의 뿔에 해당하여 붙인 이름이다. <사진 전북도농협기술원 최선우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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