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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인문기행]이순신장군이 잘 드시던 음식은?


이순신장군은 청어, 숭어, 꿀, 유자 등 철철이 다양한 식재료를 써 놓았다. 생삼도수군통제영은 전라·경상·충청 삼도의 수군을 총 진두지휘하던 해군본부이며,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이 초대 통제사로 활동하던 근거지다. 삼도의 해군과 고관대작들이 이곳에 주둔하면서 통영은 삼도의 특징이 섞인 음식 문화가 만들어졌다.
일이나 명절, 잔치 때 특별히 해 먹던 통영의 토속 음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밭작물부터 바다풀까지 열 가지가 넘는 채소를 손질해야 맛 볼 수 있는 통영 너물 비빔밥이다. 독특한 점은 밥에 조갯국을 흥건히 말아먹는 것이며, 대개는 고추장을 넣지 않고 비벼 먹는다.
임진왜란 중, 조선수군 사이에 역병이 돌았다. 수군 1만 7,000여 명 중 5,000여 명이 역병에 걸려 전투에 큰 손실을 입었다. 이에 이순신장군은 여제라는 제를 드려 수군들의 안위를 살폈다. 난중일기에는 꿀이 들어간 유과와 약과를 제사상에 올렸다고 전해진다.
바다와 거리가 먼, 지리산 끝자락에 위치한 진주 수곡면 원계마을이 있다. 장군은 약 10일 동안 이곳 원계마을에 머물며 왜적을 물리칠 대책을 강구했다고 한다.
이순신장군이 먹은 음식이 난중일기에 나온다. 대표적으로 연포국과 보리밥이다. 연포국하면 낙지 맑은 탕을 먼저 떠올리지만 조선의 연포국은 부드러운 두부가 들어간 맑은 두부탕을 의미한다.
위도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난중일기의 통해 “1597년 9월 20일 명랑해 전투를 마치고 새벽에 떠나 고참도(위도)에 이르렀더니 해가 저물어 그곳에 머물러 잤다”는 기록에서 충무공이 다녀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위도 주민들이 이순신 장군에게 전복, 굴죽과 굴젓, 바지락을 대접하자 천하일미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만큼 위도의 바지락 맛은 뛰어났던 모양이다. 특히 위도에서는 이 바지락 탕을 ‘애갈탕’이라고 부른다.
이순신장군은 1597년 4월 22일 전북 완주를 거쳐 전주에 머물렀다. 옥고를 치르고 백의종군하던 때였다. 완주에 오기 8일 전 모친상까지 치른 터라 심신이 지쳐 있었다. 이날 전주부윤 박경신이 봉상(鳳翔·완주군 봉동읍의 옛 지명)의 특산품인 생강을 이순신 장군에게 보냈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남해까지 가야 했던 이순신 장군은 생강을 먹고 기력을 회복했다. 이순신 장군은 이날 '난중일기'에 "4월 22일 맑음. 판관 박근이 와서 만났고, 부윤도 후하게 대접해주었다. 유둔(기름종이)과 생강 등을 보내왔다"고 썼다.
 '난중일기'를 보면 여러 가지 음식들이 등장한다. 정유년(丁酉年, 1597년) 7월 14일 맑은 날, 아침을 먹을 때 문인수(文麟壽)가 와가채(蛙歌菜)와 동아전과를 가져왔다. 와가채는 무명조개로 만든 음식이다. 무명조개로 끓인 국을 와가탕이라고 하는 바, 이는 조개의 이칭인 와각(蝸角)에서 나온 말이다. 즉 와가의 음을 와가(蛙歌)로 음차한 것이다.
앞선 갑오년(甲午年, 1594년) 7월 27일엔 충청수사 이순신이 과하주(過夏酒)를 갖고 왔다. 그러나 이순신장군은 몸이 불편해 조금 마셨는데 역시 좋지 않았다. 11월 11일엔 동짓날이어서 새벽에 망궐례를 드린 뒤 군사들에게 팥죽을 먹였다. 재앙과 나쁜 기운을 물리친 작은 설날의 의미를 기억했다. 11월 26일은 소한으로, 메주 10섬을 쑤었다고 했다. 을미년(乙未年, 1595년) 5월 20일엔 종 옥이(玉伊), 무재(武才) 등을 본영으로 보내고, 전복(鮑魚)과 밴댕이 젓갈, 어란(魚卵) 등을 어머니께 보냈다.‘난중일기’에는 동과를 준비해 병사들의 갈증을 해소케 했다고 기록했다. 임진왜란 중 호남 지방의 민간인과 승려들이 의병활동을 전개하여 왜군을 막는 데 큰 기여를 했다.명량해전 때 지방의 향선(鄕船)을 모아 충무공 부대를 지원하며 민간인들의 동참을 유도한 가운데 고창 출신 의병장 오익창(吳益昌, 1557~1635)은 13척의 판옥선에 승선한 병사들에게 방탄용 솜이불을 제공하고 그들에게 동아(冬瓜)를 먹여 해갈하게 하는 등의 지원활동을 했다. 군사가 노를 저으면서 갈증에 시달릴 때 그가 배에 가득히 싣고 온 ‘동아(冬瓜)’로 구원했다. 사람들이 피난하면서 버린 동아를 거두어들인 연유를 모르다가 이에 이르러 그 지략의 주도함에 모두 놀랐다. 동아는 전투 중 수군의 갈증을 해소하는 데 긴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이충무공전서’와 오익창의 ‘사호집(沙湖集)’에 나온다. 한때 드라마를 타면서 뜬 이순신 밥상이 다시 전북의 문화관광상품으로 부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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