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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주머니
 

[이종근의 인문기행]개가 사람을 살린 둠벙을 잘 아시나요


개가 김제 순동 김득추를 둠벙의 물로 살리다
[전북문화속 둠벙 이야기] 콩쥐팥쥐와 김제 두죽제 등 숱한 사연

 둠벙은 빗물에 의존하여 농사를 짓던 시절, 농경지에 조성하던 물 저장고로 주로 논의가장자리에 위치하며 농업용수 공급에 이용됐다.

전북도농업기술원 최선우박사는 "197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관개수로를 조성, 농업용수 부족이 해소되자 기조성된 둠벙을 농토로 전환하면서 상당수가 사라졌다가 농업생태계의 생물다양성 보고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이 밝혀지면서 역할을 재조명받고 있다"고 했다. 둠벙에서 전북 문화 이야기를 찾아 소개한다.[편집자 주]

 "살래(산래의 전라도식 발음)에 살아서 큰 출세했고만 그려!"란 문구가 적힌 묘지석이 있는 고 브라이언 배리(Brain A Barry, 1945~2016)의 묘는 부안군 산내면에 위치한 창녕 조씨 상호군공파 선산(仙山)에 있다.
일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다가 여느 때처럼 이웃 마을 농악판에 어울려 막걸리에 얼큰히 취한 배리씨는 빨리 돌아오려는 욕심에 익숙한 길을 놔두고 논 가운데를 가로질러 걷게 된다. 온통 눈 천지라 밤인데도 주변이 훤하고 농작물이 없는 겨울이어서 배리씨는 거침없이 논을 가로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겨울에는 둠벙에 똥을 저장한다는 것을 알 턱이 없기도 했지만 그날 밤엔 눈이 쌓여 그곳이 둠벙인지 알 길이 없던 베리씨는 난데없이 똥 둠벙에 빠지게 된다. 한 길 깊이의 똥 구덩이이서 가까스로 나온 베리씨는 온몸이 똥 철갑인 데다가 한겨울인지라 순식간에 꽁꽁 얼 수밖에 없었다.

 '콩쥐팥쥐'란 전래설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바로 이 설화의 배경이 된곳이 김제 외갓집마을로 밝혀지고 있다.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에 따르면 설화의 배경을 연구하던 중 '두죽제(頭粥堤)'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두죽제의 '두'는 콩(豆)와 팥(荳)의 유사형태로 현재는 머리(頭)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완산지’에 따르면 과거에는 콩(豆)로 표기돼 왔다는 것. 따라서 지금까지도 이 연못을 마을 주민들은 말뜻 변천에 따라 ‘팥죽이 방죽’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금구면 둔산 마을은 최씨가 약 540여 년 전부터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으며 마을 동쪽 250여m 지점에 팥죽이 방죽이 있다. 이 방죽은 현재는 이서면 앵곡 마을에 속해 있으나 1914년 4월 1일 군폐합 전 관할구역이 김제군 금구면 대화리에 포함되었었다. 팥죽이 방죽은 최씨 집성촌 후손들이 오랜 세월 가뭄에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로 활용되어온 소류지로 지금까지도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임실군 '오수(獒樹)'라는 지명은 '주인을 구한 의견(義犬)'에서 비롯됐다. 이 의견이야기는 고려 때 최자가 쓴 '보한집(補閑集)'에 수록한 '오수설화(獒樹說話)'에 근거를 두고 있다. 거령현(居寧縣, 오수, 지사, 삼계 등 오늘날 임실군 남부의 고려시대 지명)의 김개인(金盖仁)이라는 사람은 기르는 개를 매우 귀여워했다. 하루는 나들이길에 개도 따라나섰는데 주인(主人)이 술에 취하여 돌아오다 취기(醉氣)를 못이겨 들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졌을 때 들불이 일어났다. 개는 가까운 개울에 뛰어들어 몸을 적셔 주인의 주변을 뒹굴기를 여러 차례, 불길을 끊어놓고는 기진맥진하여 주인 옆에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 후, 잠에서 깨어난 주인은 자기의 생명을 구해주려다 처참하게 죽어간 개의 모습을 보고 슬픔과 감동을 노래하면서 개를 묻어주고 무덤의 표시로 자기의 지팡이를 꽂아두었다. 새봄이 오자 그 지팡이에서 싹이 텄고 세월이 흘러 큰 나무가 되자 사람들이 그곳의 지명을 獒(개 오) 樹(나무 수)라 불렀다. 원문 한자엔 ‘방천(傍川)’ 즉 옆 천으로 나온다. 우선, 가까운 시냇가, 개울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둠벙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제시 순동을 가로지르는 호남선 철로변 옆에 올림픽 기념숲이 있다. 여기에 주인을 구하고 대신 죽은 개의 넋을 위로하는 비가 세워져 있다. 옛날 김제군 옥산리에 김득추(金得秋)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개를 몹시 좋아했다. 어느 날 개를 데리고 친구 집에 놀러갔다. 그는 친구네 집에서 술상을 마주 대하고 서로 정담을 나누었다. 개를 앞세우고 집으로 향하는데 술에 취한 김득추는 나지막한 야산을 지날 때 그만 풀밭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때가 이른 봄이라 따스한 햇살 덕에 김득추는 맥을 못 추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산불이 일어났다. 불은 봄바람을 타고 미친 듯이 번져왔기 때문에 개는 김득추를 깨우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런데 한번 술에 곯아떨어진 김득추는 좀처럼 깨어나지 않았다. 김득추를 깨울 수 없는 것을 깨달은 개는 가까이에 있는 둠벙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온몸에 물을 적셔서 잠이 든 김득추 옆 풀밭 위를 사정없이 나뒹굴었다. 곤한 잠에 들어 꿈속을 헤매던 김득추는 해가 서산에 질 무렵에야 겨우 잠에서 깨었다. 김득추는 개가 잠이 든 자기를 살리려고 불에 타서 이렇게 죽어간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취하도록 술을 마신 일을 후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득추는 자기 목숨을 구하고 불에 타서 숨진 개를 그 자리에 고이 묻어 주고, 얼마 후 개 무덤 앞에 조그맣게 비석을 세웠다. 지금도 김득추가 세운 의견비 옆에는 조그마한 방죽이 있는데 이 방죽을 ‘개방죽’이라 하며, 개가 몸에 물을 적셔 주인을 살렸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먼 옛날, 정읍시 구량동 구량 마을에 개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개도 주인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술에 취한 주인은 집으로 돌아오다가 호젓한 산기슭에서 한참 쉬어 간다는 것이 누워서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난데없는 산불이 일어나 주인 곁으로 번져오는 불길을 막으려고 물을 껴앉는 등 노력을 하다가 죽고 말았다. 그러나 구량동의 의오비는 1970년대 도로 광장 공사 때 어디론지 없어지고 말았다.고창 도산서당에는 연못가에 아담한 정자가 있는데 바로 수정(水亭)이다. 정자 주변에는 고목인 이팝나무가 역사를 말해주고 있으며, 정자 앞에는 돌로 축대를 쌓은 연못이 있어 수정이라 붙인 것으로 본다. 수(水)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으로, 수성(水性)만 잘 지키면 화난 감정을 다스릴 수 있고 무병장수 할 수 있다. 2021년 설날 기자는 이 집의 장손 김경식박사로부터 이곳으로부터 나오는 연잎차를 맛보았다.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 피향정(披香亭, 보물 289호, 정읍시 태인면) 앞 1만5천여㎡에 연꽃이 만발했다.
예부터 호남제일의 정자로 이름 높았던 ‘피향정’ 못지않게 피향정 앞 연못에 핀 연꽃은 빼어난 자태로 명성을 떨쳐왔다.
특히 시가 홍련 3천200주를 보식하면서 올해는 더욱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피워 올려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피향정은 창건연대는 정확치 않다. 원래 이 정자 앞뒤로 연지(蓮池)가 있었고 최치원이 신라시대 태산군수로 재임하면서 이곳 연지 주변을 소요하며 풍월을 읊었다고 하며, 연꽃이 만발하면 연향(蓮香)이 정자 주변에 그윽해져 피향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진안 금당사 금당지엔 부처의 모습이 연꽃과 같이 볼 수 있다.

익산 둠벙 사진=전북도농업기술원 최선우박사 제공

진안 금당사 금당지 사진=이종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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