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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채수와 김감


김감의 장인 인천군 채수(1449~1515)는 문과에 장원 급제한 문장가로 유명했다. 세 사위 중에서 맏사위 김안로와 막내 사위 이자도 장원 급제했다. 과거에 장원 급제한 사람들만이 모여서 즐기는 ‘용두회(龍頭會)’라는 모임을 채수의 집에서 갖던 날, 세 명의 사위 가운데 김감만이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 김감이 그의 아내를 시켜 장인에게 가서 고하기를, “저도 35세 때에 대제학을 지냈으니, 이만하면 모임에 참여시킬 만하지 않습니까. 제발 참석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장인 채수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이렇게 애걸하니, 참석시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용두회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했다.

이는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 권9에 실려있으며, 『연산군일기』 12년 7월 29일자의 내용엔 김감의 사람됨을 엿보게 하는 글이 나온다. ‘연산군이 폭정이 심해지면서 서울 도성 주변에 금표(禁標)를 세워 백성들을 먼 곳으로 이주시키고 사냥을 일삼을 때 김감이 금표의 안내문을 짓고, ‘추천시’라는 시를 지어 아첨했다. 연산군 때 젊은 나이로 의정부 우찬성이 되어 중추부 판사를 겸임하다가 임사홍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해 경상도관찰사로 쫓겨나자, 연산군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경서문(敬誓文)’을 지어 왕에게 바치기도 했다’

'설공찬전'의 작가인 채수는 중종을 왕으로 세우려는 반정 무리에 가담하지 않은 채 충정을 지켜왔다. 그러자 이를 알게 된 채수의 사위 김감(1466~1509)이 꾀를 냈다.반정 당일 밤 채수를 찾아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그가 취하도록 했다. 김감은 만취한 장인을 반정이 한창인 궁 내부에 데려다 놓고 사라졌고, 다음 날 아침 궁 안에서 눈을 뜬 채수는 얼떨결에 공신이 돼있었다. 채수는 자의에 의해 반정에 가담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저서 ‘난재집’에 의하면, 거사 전날 반정세력이 채수를 동참시키려고 무사를 시켜 데려오게 한 일이 있었다. 그때 김감이 기지를 발휘해 아내로 하여금 채수에게 술을 먹이게 해 만취한 상태에서 쿠테타에 동참시킴으로써 공신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는 취중에서도 반정의 현장 앞에서 ‘이게 감히 어떻게 할 짓인가?’라고 말하며 땅을 치며 통탄해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수는 반정공신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가 지은 '설공찬정'에서는 반역을 꾀한 사람은 모조리 죽는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고, 결국 '설공찬전'은 금서로 낙인 찍혀 모조리 불태워 졌다가 후일 뒤늦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설공찬전의 배경은 순창군 금과면 매우마을이다. 현재 금과면엔 설충란과 설충수의 직계후손 몇 사람이 살고 있다. 채수는 시골에서 외롭게 사망했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남아있다. 의리를 지키면서 세상을 살아가기나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것은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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