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의 행복산책] '그 입 다물라' 누군가의 말에 귀기울인 게 언제인가요
공자는 자장이 관리가 되는 길을 묻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선 많이 들어라. 그중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나거든 그것은 제외해야지.나머지 믿을 만한 것도 조심조심 살펴서 말해야 한다. 그래야 허물이 적게 된다. 또 많이 보아야 한다. 그중 위태로운 것은 빼버려야지. 그 나머지도 삼가서 행해야 한다. 후회할 일이 적어질 게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함에 뉘우침이 없으면, 녹은 절로 따라오는 법이지’(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이 문장 가운데 ‘다문궐의’는 경청(傾聽)을 의미합니다.
‘경(傾)’자는 사람의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짐을 뜻하며, ‘청(廳)’자는 귀를 왕처럼 크게 하고, 눈을 보고 마음을 하나로 해서 열심히 들음을 의미하는 글자입니다.
‘청(廳)’자를 자세히 살펴 보면, 왼쪽에는 ‘귀 이’(耳) 자 밑에 ‘임금 왕’(王)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열 십’(十) 자 밑에 ‘눈 목’(目) 자를 옆으로 눕혀 놓은 글씨가 있고, 그 아래 ‘한 일’(一) 자와 ‘마음 심’(心) 자가 차례로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풀이하면 ‘듣는다는 것’은 왕 같은 귀를 갖는다는 뜻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따라서 경청은 인간이 가진 태도 가운데 가장 품위있고 개방적이며 고귀함의 상징입니다.
이 세상에 경청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로 넘쳐나 경청과는 거리가 멀게 만 느껴집니다.
경청은 그저 남의 말을 들어주는 행위가 아닙니다. 경청을 해야 커뮤니케이션의 통로가 열리게 됩니다. 때문에 리더가 되려는 사람은 경청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대중에게 다가서는 것은 그들에게 혀를 내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귀를 내밀어야 함이 지극히 마땅합니다.
말이 너무 많다고 비난하는 일이 있어도 너무 잘 안다고, 경청을 잘한다고 해서 이를 지적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지 않나요.
다른 사람의 말에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상대도 당신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습니다.
말을 제일 잘하는 사람은 논리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이청득심’(以聽得心),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는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것입니다.
입(口)을 열기 전에 귀(耳)를 열어야 합니다. 더 많이 상대방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공자가 경청을 터득하는 데 60년 걸렸다는데, 하물며 저 같은 속물이야 얼마나 걸릴까요?
‘세이공청’(洗耳恭聽), 귀를 씻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도 경청에 따른 사자성어의 하나입니다.
내 말을 줄이고 남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여보기로 다짐해봅니다.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인 게 언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