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의 행복산책2] 품석정(品石亭)바위마저도 칭찬해야 한다
칭찬이 가진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보통 누군가의 이야기를 할 때 칭찬에 인색하고 험담에 익숙하기 마련입니다. 지금 소개할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일화는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따듯한 교훈이 되어주지 않을까 합니다.
베트민의 호치민이 죽은 후 남긴 3가지 물건중 하나가 중국어로 번역된 '목민심서(牧民心書)'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요? 그러나 진작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다산의 교훈적인 말씀을 심도 있게 받아드리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사에 많은 문제점들을 남기고 있지요. 호치민도 곁에 두고 마음공부 했다는 우리의 목민심서를 많이 읽으면 우리들의 수신(修身)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런지요?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美庸), 호는 사암(俟菴) · 탁옹(籜翁 )· 태수(苔叟 )· 자하도인(紫霞道人) · 철마산인(鐵馬山人) · 다산(茶山),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며, 시호는 문도(文度)입니다. 한마디로 대단한 일물이지요.
다산 정약용이 고향 친지들과 정자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술이 거나해지자, “누구누구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권세와 명예를 거머쥐었으니 분통이 터질 일”이라고 한탄을 했죠. 그러자 다산이 벌떡 일어나 “사람은 품평(品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벌주를 드린다”고 상대에게 술을 권했습니다.
얼마 지나자 또 어떤 이가 “저 말은 짐도 지지 못하면서 꼴과 콩만 축내는 구나”고 혀를 끌끌 찼습니다.
다산은 또 일어서 “짐승도 말을 알아듣기 때문에 품평해선 안된다”며 그에게 벌주를 따랐습니다. 그러자 함께 자리한 사람들이 “그대의 정자에서 놀기가 참 힘들다”며 “이곳에선 입을 꿰매고 혀를 묶어야 하겠다”고 핀잔을 주었죠.
다산은 웃으면서 “종일토록 품평해도 화낼 줄 모르는 것이 있다”며 주변에 있는 바위를 실컷 자랑한 뒤 “입을 묶어둘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좌중의 한 사람이 “화낼 줄 모르기 때문에 바위에 대해서 자유롭게 품평할 수 있느냐”고 묻자, 다산은 “저는 바위에게 칭찬만 하였지, 언제 모욕을 주거나 불손하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까?”라는 말로 참된 품평은 칭찬에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 일화로 이 정자는 ‘바위마저도 칭찬해야 한다’는 의미의 ‘품석정(品石亭)’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네요. 다산은 자신의 일기에서 이를 소개하며, 다음과 말을 남겼 습니다.
“남을 품평하는 것은 참으로 쓸모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남을 평가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정말 남을 품평하는 것은 참으로 쓸모없는 일입니다. 남을 비평하기 전에 한 번 멈추시지요. 그러면 가볍게 입을 놀려 남과 상충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남을 비평할 시간이 있으면 오히려 칭찬을 해 보시지요. 그 발 없는 말이 돌고 돌아 상생(相生)과 상화(相和)의 기운이 몰려 올 것입니다. 가끔 힘들면 한숨 한 번 쉬고 하늘을 보시지요. 멈추면 보이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래도 남을 평가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시려는지요.
누군가의 부족한 점을 그 앞에서 하면 충언이지만 뒤에서 하면 험담이 됩니다. 또한, 충언을 하면 나의 친구가 되지만 험담을 하면 나의 적이 됩니다. 내면에 숨겨진 천성을 바라보고 상대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대인배의 마음은 결국, 만물을 내 품에 끌어안는 것이며 그와 가까워지는 길입니다.
칭찬은 상대의 가능성에 대한 인정, 그가 가진 원래의 천성에 대한 믿음과 그 회복에 대한 희망입니다. 상대의 결점은 원래 모습의 일부를 가리는 장막과 같은 것이며, 그 장막은 그의 본질로 다가서는 데 일종의 장애가 됩니다. 이때 칭찬의 미덕은 그 장막을 걷어내는 따뜻한 힘이 되어줍니다. 그를 원래의 가능성으로 이끌어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사람 관계에서의 그러한 일들을 이해하면서도, 한편 다산의 이야기를 통해 상대를 바라보는 나의 폭을 더 넓고 아름답게 할 덕성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바위마저도 칭찬한 다산의 뜻은 어쩌면 만물에 대한 무한한 인정(認定)과 그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 아닐까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와 꽂히게 되어 있습니다. 남과 자신을 다치게 하는 험담으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정다산의 '품석정(品石亭)'이 그리운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