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5년 2월 21일 7명 부안 사람 위도진서 조난사고로 사망한 사실이 확인됐다.
1825년 위도진(蝟島鎭, 현 전북 부안 위도) 해역의 해난사고가 기록된 '사변일기(事變日記)'(1723~1848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가 이를 입증하는 자료다.
비량도에 사는 이대채 박금음금 오어을박 최중천 조백구금 김사읍사리 이어질동 등 7명이 21일 살던 곳을 떠나 고기잡으러 가기 위해 차례로 하나로 배 한 척을 탔다. 한참 물길을 가니 위도진이다. 앞에 큰 파도가 일었다. 바람을 만나 배가 좌초돼 모두 비와 구름을 만나 죽었다.
이대채 박금음금 오어을박 최중천 조백구금 이어질동 등 6명은 이미 사체로 발견돼 건져졌다. 김사읍사리 1명은 사체의 부패가 너무 심했다고 기술했다.
이때는 도광5년 을유(1825년)2월 초십일 전라감사 박기수 장계가 내려져 절도부가 되고 부안현감 김성현이 안으로 본래의 현 지방을 문서로 했다.
하지만 시신을 제대로 건지지 못한 것 같다.
'하얗게 놓여 있으니 또 일곱 사람이 한때 비와 구름이 일어 지극히 불쌍하고 슬퍼 이미 사체를 건졌다. 조각을 붙여 실하게 묻었으니 엄하게 삼가하고 이마를 보내니 하얗다.
아직 보내지 못한 사채를 건져 조각에 새기고 찾아 건질일 또한 관계 하니 연해(沿海) 읍진(邑鎭)에 삼가하라. 이같이 하얗게 되었는가. 윗목이 비와 구름을 맞아 죽은 사람이다. 이대채 등 7명은 전령(典令)으로 구휼하고 청문(廳問)을 갖추었다. 모임이 없 이 일을 덜었다고 하더라'
이어 '전하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난파선에서 비와 구름이 일어 죽어 심히 삼가했다고 들었다. 가엽이 여겨 구휼하고 크게 구휼해 법전 밖의 특별함을 더하고 돌아보며 도와주라. 생전의 몸이 돌아올 것처럼 삼베를 돌려보내고 나란히 움직여 일을 나누어 주어라'고 돼 있다.
끝부문에 '임금에게 서면으로 아뢴다(계사하 啓事下) 비변사(備邊司)'로 끝을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