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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인문기행]김제선비 백석 유집, 성주 송국택으로부터 제주산 귤을 받다


한때 귤나무 한 그루면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 그만큼 수익성이 높은 귀한 나무라 빗대던 시절 얘기다. 제주에서 유일하게 귤을 재배하던 서귀포를 신이 내려준 축복의 땅이라고 부러워했었다.
‘제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특산물 중 하나가 귤이다. 제주 도심의 제주목관아(濟州牧官衙·사적 제38호)에 들어서면 자그마한 귤밭이 눈에 들어온다. 제주도가 2002년 제주목관아를 복원하면서 함께 조성한 귤밭이다. 이곳에는 다양한 귤이 자란다. 감자, 당금귤, 청귤, 산귤, 당유자…. 원래 조선시대엔 이곳 제주목관아 후원(後園)에 귤밭이 있었다. 이를 귤림(橘林) 또는 과원(果園)이라고 했다.
18세기 제주 감귤의 진상 준비 모습을 그린 ‘감귤봉진’과 제주목관아 귤밭에서 벌어진 연희 장면을 그린 ‘귤림풍악’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이다. 이것이 보물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의 매력이다. 1703년 제주목사 겸 병마절도사 이형상(李衡祥·1653~1733)이 제작한 순력 관련 기록화첩이다. 순력(巡歷)은 조선시대 관찰사가 관할 지역을 순찰하던 일을 가리킨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성상 제주목사가 전라도 관찰사 역할을 위임받아 행사했다. 1702년 3월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은 그해 10·11월 제주 지역 순력을 실시했고, 이듬해 5월에 순력과 관련한 내용을 그림으로 기록해 책으로 엮었다.
탐라순력도에는 감귤나무를 그린 그림이 3점 들어 있다. 감귤 진상을 준비하는 모습을 담은 ‘감귤봉진(柑橘封進)’, 귤밭에서 펼쳐진 연희 장면을 그린 ‘귤림풍악(橘林風樂)’과 ‘고원방고(羔園訪古)’이다.
‘감귤봉진’은 귤을 포장해 중앙정부에 진상하는 작업 과정을 묘사한 그림이다. 포장과 운반에 사용할 건초더미를 다듬는 사람도 보인다. 제주목사 이형상은 그 옆 건물에 앉아 감귤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그림 하단에는 진상 시기와 진상된 감귤의 수량을 상세히 적어놓았다. 그 내용을 보니, 진상은 9월 시작해 열흘 간격으로 20회에 걸쳐 이뤄졌다. 진상된 귤은 당금귤 678개, 감자 2만5842개, 금귤 900개, 유감 2644개, 동정귤 2804개, 산귤 828개, 청귤 876개, 유자 1460개, 당유자 4010개, 치자 112근, 진피 48근, 청피 30근이다.
‘귤림풍악’도 흥미롭다. 이 그림은 제주목관아 후원에서 벌어진 연희 장면을 담았다. 귤림은 대나무 방풍림과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바람이 불어 한쪽으로 쏠리는 대나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화면 가득 채운 귤나무의 풍경이 일대 장관이다. ‘고원방고(羔園訪古)’는 감귤 과수원 속에서의 풍류악 장면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고종21년 실록에 감귤을 배로 운송하자고 논의한 기사가 있다.“방금 전라감사 김성근(金聲根)의 장계를 보니, 삼가 관문의 내용에 의하면 감귤의 운송을 편리한 대로 하라고 제주목사에게 신칙하였습니 다. 해당 목사 심현택(沈賢澤)의 첩정에 ‘진헌하는 것은 참으로 육운(陸 運)하는 것이 만전의 계책인데, 연로의 각 읍에서 즉시 바꾸어 운송하지 않아 매양 썩게 됩니다. 대개 배로 운반할 경우에는 다행히 바람을 잘 만 나면 한 달 안에 도착할 수가 있지만 만약 바람에 막히면 썩는 것은 마찬 가지입니다. 그러나 나라의 비용이 육운보다 크게 덜 들기 때문에 배로 운반하는 것으로 정하였으며, 배 두 척에 분배하면 그 비용은 800냥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공물 진헌이 지체되는 탄식이 없게 되고 연로에 비용이 많이 드는 폐단을 줄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금년 과일 공물부터 시작하여 배로 운반하는 것으로 마련하고...... 그리고 인천에서 옮기는 절차를 미리 강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편리하게 거행하도록 경기 감사에게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했다 .(1884년 6월 27일)”
육로 운송이 시간이 걸리게 됨에 따라 도중에서 진 상 감귤이 부패하였기 때문이었다. 제주 백성들을 괴롭게 하던 감귤 진상은 1893에 폐지됐다.
김제출신 백석 유집(1584-1651)의 ‘백석유고(白石遺稿)’엔 귤 관련 시가 나온다. ‘편지로 안부 물어도 괜찮은데 겸해서 두 가지 맛 보내주셨네. 물고기는 바다색을 머금었고 귤은 동정호의 모습 띠었구나. 황금색 껍집을 손으로 까서 살집을 반찬으로 올려 놓으니 덕분에 늙은 어미 위로했지만 사사로운 은혜를 어찌 갚을까.(‘성주(송국택)가 귤과 붕어를 보내옴에 감사하며‘ 전문)’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귤은 쌀보다 비쌌다. 하지만 요즘은 재배 지역이 서귀포에서 제주 전역으로 확대된데 따른 과잉생산에다, 지구온난화로 반도 남부지방까지 재배 가능 지역이 넓혀지면서 겨울철이 되면 장바구니에 담기 가장 만만한 싼 과일이 됐다. 산지에서 제대로 된 귤 생산이 줄면서 도시에서 서민 과일 귤 값은 전년대비 20% 가까이 올랐다. 귤의 계절. 찬 바람이 불면 나는 귤을 선물하는 사람이 된다. 어쩌다 골목 어귀에서 마주친 귤 트럭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누굴 만나러 가는 길엔 부러 동네 시장을 가로질러 귤을 사들고 간다. 앙상한 겨울 풍경 속에 빼꼼 보이는 말간 겨울 귤일랑 봄꽃송이만큼이나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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