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의 행복산책]향유(香油)와 희말라야 고산족의 선택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유(香油)는 꽃이나 열매에서 뽑아낸 것이 아닙니다. 고래의 기름에서 뽑아낸 것입니다. 그것도 건강한 고래가 아니라 병든 고래의 기름에서 더욱 향기로운 향료가 추출됩니다.
우황(牛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소에서 추출되는 것이 아닙니다. 병든 소에서 우황이 나와서 우리에게 해열, 진정, 강심제 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히말라야에 사는 고산족들은 산양을 사고 팔기 위해 산비탈로 향한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그들은 산양을 사고 팔 때 그 크기에 따라
값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산양의 성질에 따라 값을 정하기 때문입니다.
산비탈 위에서는 산양의 성질을 알 수 있다는데요.
그곳에 산양을 놓아두고 살 사람과 팔 사람이 가만히 지켜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양이 산비탈 위로 풀을 뜯으러 올라가면 아무리 작고 마른 산양이라도 값이 오르고, 비탈 아래로 내려가면 몸이 크고 살이 쪘다 해도 값이 내려간다고 합니다.
이는 위로 올라가는 산양은 현재는 힘들더라도 넓은 산허리의 풀들을 먹으며 건강하게 자랄 미래가 있지만, 아래로 내려가는 산양은 결국 협곡 바닥으로 향하게 돼 있고, 그곳에 이르러서는 굶주려 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태 민족사에 큰 교훈이 되고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가고 있었습니다. 날씨는 타는 듯 뜨거웠고 길은 지루하기 한이 없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저는 힘이 다 빠진데다가 목이 타서 죽겠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이렇게 격려합니다.
“아들아 용기를 내라. 우리의 선조들도 이 고난의 길을 다 걸어갔단다. 이제 곧 마을이 나타날 것이야”
아버지와 아들은 계속해서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때 그들의 눈에 공동묘지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본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것 보세요, 우리 선조들도 여기서 모두 죽어갔지 않아요. 도저히 더 이상 못 가겠어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공동묘지가 있다는 것은 이 근방에 동네가 있다는 표시다”
이렇게 죽을 만한 고통을 이겨내고 마침내 아버지와 아들은 무사히 그 사막을 지나갔습니다.
흔히 좌절해 버리기 쉬운 죽음의 상징인 무덤 앞에서 생명과 희망을 찾을 줄 아는 지혜를 인간은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곧 사람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은 거기에 희망도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괴테는 “눈물을 흘리면서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들은 대부분 고난을 통하여 대성(大成)한 인물들입니다. 음악가로 청각을 잃고도 이를 극복한 베토벤의 위대한 정신력은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이드리스 샤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적절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약삭빠르게 뭔가를 얻으려고 하는 자는 결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삶의 성공은 도전하고 포기하지 않는 자의 전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