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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주머니
 

[이종근의 인문기행]호랑이로 만나는 전북 문화


2022년은 임인(壬寅)년, 흑호(黑虎)가 달려온다. 2022년은 임인(壬寅)년으로 검은 호랑이의 해다. 삿된 것을 쫓아주는 백수의 왕이라 일컫는 호랑이, 힘과 용맹을 상징하며 산신(山神), 산군(山君) 등 신수(神獸)로 여겼고 전북 곳곳에 전하는 호랑이 보은(報恩) 설화(說話)에는 은혜를 갚는 동물, 효자를 지켜주는 동물로 인식되기도 했다.

임실 신평면 호암리 석상

임실 신평면 호암리 두류마을에 있는 익살스런 표정의 호랑이 석상. 이마의 주름처럼 보이는 것은 호랑이 무늬를 표현한 것이다. 호암리 두류마을의 호랑이 석상(호암리석상)은 두류마을 입구에서 호암리낚시터로 가다 오른쪽 농로를 따라 150m쯤 들어가면 군부대 철조망 옆에서 만날 수 있다. 250년 전 세워졌다는 석상이다. 둥글넓적한 얼굴에 눈은 부라리고 있지만, 입은 찢어지기라도 할 듯 환하게 웃고 있는 익살스런 표정의 호랑이다. 호암리엔 애초 지명 유래가 된 호랑이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마을 뒷산의 절 중이, 마을에 우환이 없고 평화로워 시주하는 이가 없자, 마을을 지키는 호랑이바위 때문이라고 여기고 주민들을 꾀어 바위를 깨버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마을에 우환이 잇따르자 주민들이 다시 호랑이 석상을 만들어 세웠고, 마을은 평화를 되찾았다고 한다.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30여년 전 이 일대에 군부대가 들어오면서 마을은 해체되다시피 했고,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지금 이 호랑이 석상은 철조망 앞에서 부대를 지키는 초병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임실군 호암리에 위치하고 있는 호랑이 석상. 우리가 알고 있는 해태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며, 또한 전통적으로 그려지던 호랑이의 그림과도 사뭇 다르다. 바로 호랑이가 웃고 있는 모습을 담은 석상이기 때문이다. 동그란 얼굴. 위로 돋은 귀. 무서운 표정 대신 환한 웃음을 짓고 있지만 호랑이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더구나 그 표정이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호랑이의 몸체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얼굴에 호랑이의 얼룩무늬가 음각되어 호랑이의 외관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것이 특징이다. 석호는 얼굴 가로·세로 각각 약 50cm 신장 약 90cm 몸길이 약 130cm에 해당하며, 제작 연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남원 광한루원 호석

 

호석(虎石)은 호랑이 모양의 돌조각이다. 광한루원 완월정에서 서문 방향에 위치해 있다. 전라도관찰사 이서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전언에 의하면 남원시 수지면 고평리 속칭 개머리산[견두산]에 들개떼들이 인명을 해치고 큰 화재가 빈발하여 괴변이 잦았다. 이서구는 남원부사에게 명하여 개는 호랑이로 제압해야 한다고 말하고 호석을 만들어 견두산을 바라보게 하였다. 광한루 경역이 확장되기 이전에 시장자리였는데 그곳에 호석이 있었으므로 그곳을 한 때 호석거리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한편 광한루원 관찰사이서구영세불망비(觀察使李書九永世不忘碑): 1882년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서구[1754~1825]는 조선시대 문신으로 자는 낙서, 호는 척재이다. 1793년(정조 17)과 1820년(순조 20) 두 차례 전라관찰사를 지냈으며 남원군 수지면 견두산 주변에서 잦은 재변이 일어나자 견두산을 제압하도록 호석을 남원부 중에 세워 재난을 막았다. 일설에 판소리 단가 「호남가」를 지어 전라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전라도민을 사랑하였다고 전한다.


용담면 와룡리 호랑이상

진안 용담면 와룡리 호미동마을은 여우골에서 내려오는 산세가 여우가 산을 올라가다 뒤돌아보는 형국이며, 마을 뒷산 산세가 여우가 산으로 올라가다 뒤돌아보는 형국이다. 마을은 여우 꼬리 부분에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마을 명칭이 호미동(狐尾洞)이다. 그래서 마을 이름의 '호'는 여우호(狐)를 쓴다. 호미동 마을풍수는 2가지 구조를 갖고 있다. 바로 여우골 형국과 괘바우(고양이바위)와 관련된 풍수신앙이 바로 그것이다. 괘바우는 주자천 변에 자리해, 주자천을 경계로 산정마을쪽에서 위치하면서 호미동을 비치고 있다. 호미동쪽 강변에는 쥐바위 수십 여 개가 놓여있다. 괘바우는 고양이바위이며, 쥐바위는 쥐가 들판에서 곡식을 주워 먹는 모습과 비슷해 쥐바위로 부른다. 예전에는 징검다리로 건넜다. 하지만 와룡교가 설치되어 산정마을의 고양이가 건너와 호미동의 쥐들을 잡아먹을까 우려한 나머지 그 근처에 2기의 호랑이상을 세워놓았다. 와룡교는 1993년 12월 31일에 놓았으며, 길이 72미터, 폭 6미터입다. 다리 입구에는 호랑이 두 마리를 신정마을 쪽을 향해 앉혀 놓았다, 신정교 위쪽에는 고양이 바위가 있고 여우 꼬리에 해당하는 기슭 ‘왜두들’ 논에는 바위 수십 개가 있었던 바, 이를 고양이를 노리는 쥐로 보았다. 다리가 없어 건너오지 못하고 있던 차에 다리가 놓여지면서 와룡마을에 침입했다고 한다. 그래서 청년 너댓 명이 음독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자 건너오지 못하도록 호랑이 두 마리를 앉혀 지키게 했다. 그 뒤로 부터는 이같은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쥐와 고양이는 상극이고, 고양이와 호랑이는 상극이기 때문이다. 호랑이상을 세운 후 마을에 변고가 없어졌다고 한다.

호랑이상은 산정마을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정면으로 바라보고 다가오고 있는 맹호출림(猛虎出林) 호랑이 그림은 배가 고파서 사냥하러 나오는 호랑이기 때문에 포악하다. 1996년 촬영할 그 당시의 호랑이의 포효가 느껴지나?‘용담호랑(龍潭虎狼)’은 부귀면 대곡리에서 전해오는 효자가 호랑이로 둔갑한 이야기를 말한다. 부귀면에서 조사된 내용에서는 황구 서른 마리가 약이 된다는 내용이지만, 이본에 따라서는 황구 1,000마리, 또는 황구의 신(腎) 100개나 1,000개가 등장하기도 한다. 또 호랑이가 인간으로 둔갑하지 못하게 한 원인을 제공한 아내를 이본에 따라서는 물어 죽이지만, 부귀면 본에서는 ‘자기 마누라 같은 청춘 여자’를 잡아먹는 것으로 바뀐다. 부귀면 본에서는 이야기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용담’과 ‘심인재’ 등 주변 지역의 지명이 등장하고 있으며, 화자의 조부님과 힘이 장사였지만 호랑이를 잡는 과정에서 가슴을 할퀸 호랑이 이생원 같은 실제 인물도 등장시키고 있는 점이 독특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어머니의 병이 깊어지자 의원은 황구(黃狗) 30마리를 먹어야 낫는다는 처방을 내렸다. 그러나 아들은 가난해 황구를 살 수가 없어 산에 가서 열심히 기도를 한다. 그러자 산신으로부터 변신할 수 있는 둔갑 책을 얻게된다. 이 책을 읽고 재주를 폴짝 넘으면 호랑이로 변신이 되고, 다시 재주를 넘으면 사람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밤마다 호랑이로 변신해 황구를 잡았던 바, 30마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부인은 남편이 밤마다 집에 오면 개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못 견뎌 했다. 하루는 부인이 숨어서 이를 지켜보니까 남편이 책을 펴놓고 재주를 넘자 호랑이로 변하는 것이었다. 놀란 부인은 그 즉시 둔갑 책을 태워버렸다. 호랑이로 변신했던 남편이 돌아와서 책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해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 뒤로 호랑이는 ‘용담 호랑이’가 되어 어슬렁거리다가 배가 고프자 자기 마누라 같은 청춘 여자를 잡아먹었습니다. 결국 관에서 전문 포수를 동원해 용담 호랑이를 죽이고 말았다.

용담면 원와룡(臥龍) 마을은 지금으로 부터 약 300여년 전에 마을 뒷산에 큰호랑이가 서식(捿息)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지나가던 풍수가 산세를 보고는 호랑이 꼬리가 닿는 골짝터가 명당이라고 해서 그곳에 집을 지었더니 호랑이가 밤마다 재물을 물어다 주어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명칭도 호미동(虎尾洞)이라 불렀으며, 지금도 매년 한차례씩 시루떡을 만들어놓고 산신(山神)에게 제사를 올리고 있다. 용담면 호암(虎岩)마을에 살던 김효자가 노모가 병 들어 개고기를 먹고 싶다고 함으로 주문(呪文)을 외워 호랑이로 둔갑해 밤마다 개를 잡아다 노모를 공양했다. 밤마다 나갔다 들어오는 남편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아내가 어느 날 숨어서 남편의 둔갑술을 보고는 주문을 몰래 불태워 버리자 김효자는 다시는 인간으로 환생할 수가 없었으며 눈물을 머금고 방황하다가 죽어서 바위가 됐다고 한다. 그리해 마을 이름을 범바위라 부르며 한자로 호암이라 칭하게 됐다고 한다. 이 마을은 용담면의 관문에 있는 마을로 260여년 전부터 마을이 형성됐다.

한줌 햇살, 한 줌 행복이 정성 어린 농부들의 손끝에서 태어난다. 진안 운장산 일대는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씨 없는 감나무가 잘 자라고 있어 예부터 씨 없는 곶감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처마엔 어김없이 붉은 곶감이 달려있다. 햇살 한 줌 탐이 나서 하늘에 손뻗어 움쥐어보니 호랑이가 무서워할 정도로 그 맛이 좋다. 시나브로 손 안에 든 햇살에 맑은 가락이 흐른. 햇살 한 줌, 바람 한 점이 하늘담은 삶터에서 하늘닮은 당신을 하늘거리게 만드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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