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령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경로당으로 완산동 군자정 자리하고 있다. 예로부터 전라관찰사나 전주부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으로 지금도 자치단체장을 비롯한 정치인과 기관장들이 어르신들의 덕담을 듣기 위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기령당은 전주 기령당 기록자료집에 이어 이번에 보존문서 번역본 2집을 발간하고, 나머지 3집은 연말에 발행한다. 최병로 기령당 사무장을 만나 그 역사를 들어보았다./편집자 주
▲전주 기령당의 역사는
424년의 전통과 역사를 계승하는 기령당의 위상을 더욱 높이고 전주 한옥마을과 연계, 중요한 역사문화공간으로서의 가치를 보존하고 계승시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기령당은 전라관찰사나 전주부윤이 취임 후 가장 먼저 찾는 곳으로, 이러한 관례를 생략하면 옷을 벗는다는 말이 있다. 현재까지도 자치단체장을 비롯, 정치인과 기관장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귀한 자료가 많다고 들었는데
이곳에는 ‘전라도 선생안’과 ‘전주부 선생안’을 수호신 격으로 간직하고 있다. 선생안(先生案)은 조선시대 각 기관에서 전임 관원의 성명 관직 생년 등을 적어 놓은 것이다. 기령당에는 1899년과 1921년, 1926년, 1950년대로 추정되는 모두 6권의 규약문이 전해진다. 규약문에는 120여 년 전, 기령당에 드나들던 이들의 출입을 금한다거나 행동을 제지하는 등의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어 눈길을 끈다.
▲이번에 어떤 책을 국역했나
기령당은 전주 기령당 기록자료집에 이어 이번에 보존문서 번역본 2집을 발간했다, 나머지 3집은 연말에 발행한다. 완산제노수계문(完山諸老修禊文) 등이 핵심이며 전주의 경로사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3권은 기령당이 갖고 있는 그림과 편애, 주련 등을 한글로 소개할 생각이다.
▲완산제노수계문(完山諸老修禊文)을 소개해달라
1860년 5월 전라관찰사 송은(松隱) 윤행복(尹行福. 1796~미상)의 완산제노수계문(完山諸老修禊文)에 의하면
중국 ‘서경’의 ‘홍범구주’편에 보면 오복(五福)에 관한 글이 나오는데 장수가 그 첫번째라고 했다. 향당에서는 연치(年齒)보다 높이는 것이 없자 않나. 홍범구주엔 첫째는 수(壽), 둘째는 부(富), 셋째는 강령(康寧), 넷째는 유호덕(攸好德), 다섯째는 고종명(考終命)이다. 수는 오래오래 죽지 않고 천수를 다하는 것, 부는 경제적으로의 풍족, 강령은 건강, 유호덕은 덕을 쌓음, 고종명은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말한다. 다음은 그 내용의 일부다. '천지는 지극히 신령하여 높고 낮음과 앞뒤의 차례가 있거늘 사람의 도는 말해 무엇할까. ’종묘에서는 관계가 가까운 친척을 높이며, 조정에서는 지위 높은 사람을 높이고, 마을에서는 어른을 높이며, 일할 때는 현명한 사람을 높이니 이것이 대도의 차례다'
▲기령당을 더 소개하면
기원은 지금의 용머리 고개 동쪽에 지어진 군자정(君子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전주성 함락으로 관련 문서가 전부 소실돼 정확한 건립 연도를 파악할 수 없어 1597년부터 운영한 것으로 추정한다. 군자정에서 나이 많은 전주 유지들이 활을 쏘며 친목을 다졌는데 이를 기령당의 시초로 보고 있다. 조선 영조 때인 1767년 민가에서 발생한 불로 전주부성 내 1,000여 가구가 불에 탔다. 이때 군자정까지 소실됐다. 마침 불어닥친 광풍에 군자정 현판이 날아가 현재 기령당이 위치한 장소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를 기이한 징조로 판단, 여기에 정자를 다시 세운다. 이후 군자정은 다른 정자와 합정(合亭)됐고 이로 인해 사유지로 넘겨져 절로 바뀌었다. 다만 군자정이 맡은 경로당 역할은 1899년 부사청사(府使廳事) 건물로 옮겨져 양로당이란 편액을 걸고 계속됐다. 전라관찰사 조한국과 군수 이삼응의 보조로 운영돼다가 일제강점기인 1911년 관청 건물이 환수돼 부동면 오계리(현 풍남동)로 옮겼지만 유지가 어려워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1921년 진사 이건호가 완산동의 가옥을 기증해 현재의 ‘기령당’이란 이름으로 고쳤고 1949년 지역 부호 인창섭이 절로 사용되던 군자정터를 매입, 기증하면서 현재까지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기령당 당원은 몇명이 활동하나
기령당 회원은 200여명에 이른다. 대부분 공직에서 은퇴한 이들이다. 이들은 십시일반 연회비를 내 살림을 꾸려 나간다. 코로나 이전에는 정회원 60여명이 매일 이곳에 나와 친목을 다졌을 정도로 활발히 운영됐다. 지난 2008년부터는 병자호란 때 중단됐던 기로연(耆老宴)을 부활시켰다. 기로연은 기로소(조선 시대 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기구, 耆老所)에 등록된 나이 많은 문신들을 위해 국가에서 베풀어주는 잔치를 말한다. 이는 중앙절인 매년 음력 9월 9일에 기로연을 개최한다. 대한노인회 추천을 받아 사회에 헌신한 9명의 은퇴관료를 초청해 연회를 베풀고 있다. 경로당의 뿌리이며 노인복지의 상징인 기령당이 앞으로도 명맥을 꾸준히 이어가 후대에도 충효사상을 전파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독거노인들에게 찰밥 등을 나눠주는 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