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여름날의 능소화여! 앙증맞은 창문이 두 쪽 나있어 싱싱한 바람이 건듯건듯 모든 사람들에게 건너올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능소화’는 한자로 ‘업신여길 능’, ‘하늘 소’, ‘꽃 화’자로, 하늘을 업신여기면서도 마구 기어올라가며 꽃을 피운다는 그 이름, 참으로 기찬 발상으로 우아하고 특이합니다.
덩굴 속에서 간간이 피워 올린 능소화가 영롱한 빛을 뽐내는 진정한 연유는 아닐까요.
여름만 되면 가슴 아픈 전설을 안고 여염집 담장 사이로 아름답게 피는 능소화는 꽃말보다는 양반의 꽃으로 더 알려졌지요.
먼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이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서만 심을 수 있었다고 전합니다.
상민의 집에서 능소화가 발견되면 관가로 잡아가 곤장을 때려 다시는 심지 못하게 벌을 내렸다는 얘기가 진짜처럼 들리지요.
중국이 원산지인 능소화는 금등화(金藤花)로도 부르며 선비같은 품위와 기개를 지녔다는 생각입니다.
화단의 다른 꽃들이 대부분 진 후, 고고하게 피어난 후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전, 통꽃 그대로 툭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비바람에 찢겨져 흩어지느니 차라리 목을 꺾는 비장함, 전주의 양반들은 모름지기 이같은 정신을 빼 닮고자 했던가요.
카친 운정 이환춘님의 작품에 담장 너머 능소화로 벌 한마리가 날아듭니다.
‘양반은 얼어 죽을지 언정 곁에서 쪼그리고 치사하게 앉아 있지 않으므로 얼어 죽어도 겻불을 안 쬔다’는 속담을 되뇌이게 하는 징표인가요.
고 박경리 선생은 소설 토지에서 ‘미색인가 하면 연분홍 빛깔로도 보이는’ 능소화를 최참판댁의 상징으로 종종 등장시킵니다.
“환이 눈앞에 별안간 능소화 꽃이 떠오른다. 능소화가 피어 있는 최참판댁 담장이 떠오른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여름날, 담장 너머로 길게 고개를 내밀고 오고 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갑게 웃어주며 트럼펫 같이 생긴, 청량한 붉은색의 능소화처럼 살고 싶습니다.
비겁과 거짓이 횡행하는 오늘. 꽤 오랫 동안 한자리에 서서 능소화의 귀엣말을 듣습니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 소나기가 한 차례 시원하게 지나간 뒤, 능소화가 더욱 생기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지구촌 모든 사람들의 바램이 소담스런 주황빛으로 뚝뚝 흘러 솟을대문 앞을 지나는 사이, 사랑도 평화도 탄탄태로. ‘비단 위에 꽃을 더한’ 금상첨화로, 풍요로움과 편안함의 길이 잔칫날의 멍석마냥 널찍하게 펼쳐졌으면 더 없이 좋겠습니다.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길목, 능소화처럼 저리도 곱디곱게 치장할 수 있다면 우리네 삶이 더 없이 행복하지 않을런지요.
이 풍진 세상에도 돌담에 당당하게 선채 비바람을 잘이겨낸 가운데 기대어 등을 내거는 능소화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