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릉도원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6폭 병풍에 그려진 풍경화가 말 그대로 가슴을 적신다.
소정(小亭) 변관식(1899~1976)이 1944년 겨울, 전주 완산서실서 농촌의 풍경을 그린 것으로 나타나 관심을 끌고 있다.
변관식의 '산수춘경(1944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내년 3월 13일까지 갖는 '이건희 콜렉션 특별전‘에 함께 소개된 이상범의 '무릉도원'(1922)과 함께 한국적 실경산수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산수춘경'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이른 봄의 산천을 초록색 필선과 점묘로 나타냈다.
이는 1944년 겨울, 전주 완산화실서 이 그림을 그렸다. 30년이 지난 1974년 초봄, 이 작품을 다시 보고 적은 그림 왼편의 제시(題詩)는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은 또 산자락 아래 노란색 지붕의 초가집들과 그 주변을 둘러싼 분홍색 복숭아꽃은 농촌을 도원의 이상경(理想景)으로 전환시키며 봄의 정취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
무엇보다도 고전적 인물로 묘사된 문인과 가야금을 든 동자가 근경의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걷고 있는 바, 이는 '소정 양식'의 완성 이전에 그린 것이어서 또다른 느낌을 가져다 준다.
최경현 미술사가는 "'산수춘경'은 신남화(新南畵)를 절충한 사경산수화에서 완전히 벗어나 '소정 양식'으로 넘어가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며, 실경 스케치를 기반으로 화풍 변화를 모색하던 과정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전시중인 그의 또다른 작품 ‘무창춘색'은 1955년 봄, 전주의 완산을 여행하며 그린 그림으로 전체적으로 안정된 구도에 길과 돌다리를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사실적인 풍경이 돋보인다.
지팡이를 짚고 걷는 노인과 머리에 짐을 얹은 소녀의 모습이 봄기운이 완연한 풍경 속으로 보는 이를 깊숙하게 끌어들인다.
이 작품은 종이에 수묵채색으로 담아낸 6폭 병풍으로, 마을 전체를 뒤덮은 복사꽃을 적묵법(積墨法·먹의 농담을 살려 차례로 쌓아가듯이 그리는 기법)으로 그리며 장대하면서도 환상적인 이미지를 구현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한편 변관식은 공업전습소(工業傳習所)를 졸업한 1916년부터 도화서 화원을 지낸 외조부 조석진(趙錫晋, 1853-1920)에게 조광준(趙廣濬), 김창환(金彰煥) 등과 그림을 배움과 동시에 서화미술회 연구생으로 그림을 본격적으로 학습했다.
이때 만난 이상범, 노수현, 이용우와 1923년 3월 결성한 동연사(同硏社)를 중심으로 신구화법(新舊畵法)의 절충을 시도했다. 1925년 일본에 유학한 그는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 1875-0945)에게 사사하였고, 신남화(新南畵)를 절충한 작품들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이상범이나 노수현보다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자 1930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를 외면하였고, 1937년 금강산 여행을 시작으로 전국의 명산을 주유하며 실경 사생(寫生)을 기반으로 독자적 화풍을 모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