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스토리
최근들어 완주군 봉동읍 둔산리에 터를 잡은 전주류씨 류혼(柳渾)의 5세손 진학재(進學齋) 류팽성(柳彭成, 1483∼1547)의 장자와 차남인 류세화, 류세무 분묘 출토유물 2건이 전북 민속문화재로 각각 지정됐다.
진학재공파는 고려말 공양왕 때 충숙공(忠肅公) 호은(壺隱) 류혼을 원조로 섬기고 있다. 그는 국사가 기울어가자 벼슬을 버리고 전주 완산에서 살았다. 조정에 알현하지 않았으므로 귀향을 보냈다고 한다. 목은 이색은 '절의자는 바로 이 분이다'고 했단다.
류세화, 류세무 분묘 출토 유물들은 전주 류씨 진학재공파가 완주군 둔산리에 선영(先塋)을 조성해 대대로 장지로 삼았다. 1998년 이 일대를 전주과학산업연구단지로 조성하던 중 여러 무덤에서 다량의 부장품이 출토됨에 따라 전북대학교 박물관의 긴급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류세화 분묘에서는 백자, 묘지명, 패옥과 구슬, 석제 인장, 청동거울과 청동수저 등 50점의 유물들이 출토됐으며, 류세무의 분묘에서는 백자, 묘지석, 벼루, 청동거울과 청동수저, 부채살, 붓 등 36점의 유물들이 출토됐다. 바로 86점이 민속문화재 38호와 39호로 각각 지정된 것.
조선 전기에 활동한 무덤 주인의 신원이 명확해 해당연대가 뚜렷하고, 조선시대 복식사와 상·장례 풍속사 분야의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조선 전기 문인의 행적을 파악하는 사료의 가치와 조선시대 지방 유림의 부장품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특히 임진왜란 이전의 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류세무(1524~1588) 묘의 백자 향로 2점은 모양이 각각 다르다. 다른 하나는 뚜껑이 없다. 류응원(1560~1637) 묘의 육경천형(六庚天刑) 글씨가 쓰여있는 목함(木函)은 실물자료로 학계에 보고된 일이 없어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로 평가된다. 첫째, 목함은 1637년의 것으로 연대가 확실한 첫 고고학적 사례이다. 둘째, 종이가 아닌 목함 자체에 주서를 직접 썼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류응원의 사망월이 음력 3월로 기존의 육신천정(六辛天庭)이 아닌, 육경천형으로 바뀐 것은 15세기 조선의 천문역법 등 과학 분야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종철 전북대 박물관 학예사의 설명이다.
류응원의 후배위 전주최씨 묘에선 공작 흉배가 가로 방향으로 부착된 장식용 수의가 발견됐다. 이를 단령(團領)이라고 한다. 이 단령이 생전에 착용했던 것인지 수의용으로 부장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의 이견이 있다. 이 수의는 한삼, 회장저고리, 겹장옷, 누비장옷, 단령 순으로 상의를 입고 있다. 이는 16세기 수의 단령에서 17세기 원삼으로 변천되는 과도기의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공작 흉배일까. 좀더 진전된 연구와 논의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