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천주교 최초 순교자 터,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이름 난 곳
전동성당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복자 권상연 야고보가 1791년 12월 8일에 참수되어 순교한 곳으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첫순교터이다.
윤지충·권상연 이 순교한 지 100년이 지난 1891년 봄, 순교 터에 본당 터전을 마련해 전교를 시작 한 호남의 모태 본당이다. 초대 주임신부인 보두네 신 부가 1908년 건축을 시작, 명동성당을 설계한 푸아스 넬 신부에게 설계를 의뢰해 1914년 완공됐다.
전동성당 의 유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분주폐제’(焚主廢祭,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움)와 ‘대박청원’(大舶請願, 선교사를 데려오기 위해 서양선박을 불러들임)이다.
전라도 진산(지금의 충남 금산)에 살던 윤지충은 1791(신해)년 5월 모친상을 당한 뒤 외종형 권상연과 상의해 유교식 조상 제사를 폐지했는데, 이는 당시 조정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이른바 ‘진산사건’. 결국 두 사람은 진산에서 체포되어 전주로 압송되었고 ‘풍남문 밖’인 지금의 전동성당 자리에서 참수되어 9일간 풍남문에 내걸렸다.
이곳 신자들 사이에서는 “당시 혹한에도 선혈이 응고되지 않았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렇게 해서 한국 천주교회의 첫 순교자가 탄생한 것이다.
‘대박청원’은 호남의 부호이면서 천주교를 가장 활발하게 전교했던 ‘호남의 사도’ 유항검이 중국에서 사제 영입운동을 전개한 사건. 유항검은 “중국인 주문모 신부를 조선 땅에 잠입시켰으며, 천주교 전교를 위해서 서양의 함대를 불러들이는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대역 무도죄와 사학괴수로 몰려 1801년 역시 ‘풍남문 밖’에서 능지처참형을 당해 순교했다.
전동성당을 지을 당시 마침 전주읍성의 성벽이 헐려 풍남문 언저리 성벽돌을 가져다 성당의 주춧돌로 삼았다고 한다. 순교자들의 피가 배었을 주춧돌 위에 신도들은 붉은 벽돌과 회색벽돌을 쌓아갔다.
석재는 익산 황등산의 화강석을 마차로 운반했고, 목재는 치명자산에서 벌목해 사용했다. 전주는 물론 진안과 장수지역 신도들까지 매일 새벽에 와서 건축공사에 참여했고, 밤늦게 횃불을 들고 집에 갔다고 한다.
1931년 성전봉헌까지 무려 23년이 걸렸다. 대체로 일본을 통해 서구를 접한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전동성당은 서구인이 직접 유입한 서양식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전동성당은 ‘순교자의 피가 흐르는 땅’에 세워진 성지로 알려졌으며 국내 천주교 신자들이 반드시 한번은 방문하는 순례 1번지가 됐다. 영화 ‘약속’ 에서 박신양·전도연 의 결혼식 장면 이곳에서 촬영됐다.
1937년 전주교구 설립과 동시에 주 교좌 성당으로 격이 오른 전동성당은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점령당해 전라북도 인민위원회와 차량 정비소·보급창고로 사용되면서 제대와 성당 내부가 파괴됐다.
민주화의 열기가 뜨겁던 1980년대엔 전라북도 지역 ‘민주화의 성지’로 각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