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55
대풍가
大風起兮雲飛揚 센 바람 이 부니 구름이 높날리네.
威加海內兮歸故鄕 위엄을 해내에 더하고 고향으로 돌 아가네.
安得猛士兮守四方 어떻게 용맹한 군사들을 얻어 사방을 지킬까
오목대는 태조 이성계가 남원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후 전주이씨 종친들을 모아 ‘대풍가(大風歌)’를 부른 것으로 유명하다.
고려 말엽 1380년, 왜구의 침략이 빈번해져 백성들이 불안에 떨자 우왕은 이성계를 전라, 경상, 충청 3도를 아우르는 도순찰사로 임명하고, 남원으로 내려가 왜구를 소탕할 것을 명령한다.
당시 북쪽의 거란족의 침입을 막아내며 국민적 영웅이 된 이성계는 백성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남원에서 적장 아지발도를 무찌르고 말 1600필을 획득하는 황산대첩을 거두게 된다.
용비어천가의 기록을 보면 이성계가 첫 번째 화살로 아지발도의 투구끈을 끊은 다음 두 번째 화살로 이마부위를 맞혀 투구를 벗기자, 그의 부하 이지란이 화살을 날려 사살했다고 전하고 있다.
왜구를 전멸시키고 승리감을 만끽한 이성계는 개성으로 가는 도중 길목에 있는 오목대에서 전주이씨 종친들을 불러 모아 크게 잔치를 베풀었다. 집안 어르신들을 모시고 잔치를 벌이며, 발밑에 널리 펼쳐진 전주시가지를 보며, 호탕한 모습으로 그 유명한 대풍가를 부른다.
대풍가는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자신의 고향인 패현(沛縣)에서 불렀던 그 노래다. 북방에서 거란족과 여진족을 무찌르며 승승장구하던 이성계. 북방 변방의 장수에 불과했던 이성계는 남원 황산전투의 승리를 통해 명실상부한 고려의 실력자로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무능한 정권에 실망했던 백성들은 외적을 물리치며 승승장구하던 이성계 장군을 ‘목 자득국’(木子得國, 이씨가 나라를 얻는다)의 노래를 부른다. 고려의 실력자로, 새로운 임금으로 추앙받던 이성계는 금의환향의 심정으로 오목대에서 이씨 어르신들과 정담을 나누었을 것이다.
이때가 조선 건국 12년전의 일이다. 그는 과연 어떤 꿈을 꾸었을까.
누각 왼편에는 1900년대 고종의 친필로 세겨진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址)라는 비각이 있다. “조선을 창업한 태조께서 말을 멈추고 머물렀던 곳”이라는 뜻이다. 왜 고종은 이런 비각을 세웠을까. 아마도 기울어져 가는 조선을 바로세 워야 하는 절박한 심정에서 태조 이성계의 기개를 그리워한 것은 아닐까.
전주의 오목대는 조선의 역대 왕들에게는 기개를 아로새겨주는 일종의 모태였던 셈이다. ‘자만금표’라는 표석이 있다. 왕조가 살었던 곳이므로 아무나 이곳에 출입을 할 수 없다는 표시다. 왕가를 일으킨 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