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한옥마을은 9만여 평 구역 안에 800여 채의 기와집이 모여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한옥집단마을이다. 2010년 이 후 한옥마을 관광객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최근에는 한해 천만명이 다녀가는 대한민국 대표 ‘핫플레이스’(Hot place)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전주한옥마을은 1911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다. 당시 일제는 호남평야 의 쌀을 수탈해 가야 했다. 전주에서 군산항까지 중심도로를 내기 위해 전주성곽의 서쪽을 헐었다. 이때 개설된 도로 가 봄이 되면 벚꽃길로 유명한 ‘전군가도’이다.
호남일대에서 생산되는 쌀을 군산항으로, 그리고 일본 본토로 원활하게 수송하기 위해서이다. 급기야 풍남문을 제외하고 동문, 서문, 북문을 모두 헐었다.
○저항하던 선비들, 한옥마을에 터를 잡다
쌀의 수탈이 진행되는 동안 전라도 농민들의 신분과 처지는 급속히 나락으로 떨어져 갔지만 상대적으로 호남에 거주 하는 일본인들은 승승장구했다. 특히 일본인 상인들은 이 과정에 얻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허물어진 성곽 안으로 들어와 일본식으로 집을 짓고 상권을 형성하여 세를 불리기 시작했다.
조선왕조의 정신적 본향인 전주에 일본인들이 물밀 듯 들어왔고, 1930년을 전후로 일본인의 세력확장은 절정에 달했다. 일인들의 세력확장에 대한 반발로 전주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일제에 저항하던 선비들이 한옥마을터에 하나둘 모여들어 기와 지붕을 얹기 시작했다. 이곳은 조선 태조의 어진(御眞)을 모신 경기전이 버티고 있는 지역이며, 전주향교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1900년초 부호들의 신식동네
전주인들의 신흥주택가로 부상한 한옥마을은 30년대만 해도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부자들의 신식동네였다. 70년대까지 일 년에 1만석을 거둬들이는 부호들이 살았다고 한다. 건축양식도 새롭게 변했다. 한옥에 쓰이지 않던 유리문을 해달기도 했다. 주방과 화장실도 쓰기 편하게 지어졌다.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주거형태였던 셈이다. 해방이 되면서 한옥마을은 전주의 대표적인 부촌이요, 인구밀집 지역이 됐다. 전주한옥 마을이 현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주민들의 고통과 희생의 값진 결과이기도 하다.
○故 박정희 前 대통령, 한옥보존지구 지정
한옥마을이 보존의 굴레를 쓴 것은 지난 1977년. 당시 한옥마을 뒤편 그러니까 현재의 기린로는 전주에서 남원으로 이어지는 전라선 철길이었는데 철도편을 이용해 이곳을 지나던 박정희 대통령이 열차속에서 한옥마을을 내려다보고, “저렇게 좋은 곳은 보존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자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됐다고 한다.
하지만 보존지구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의 어려움도 시작됐다. 한옥의 형태를 변경하는 일은 일체 금지돼 비가 줄줄 새도 지붕하나 마음대로 고칠 수 없었다. 그때만 해도 제대로 된 도시계획이나 재정적인 뒷받침 없어 그저 한옥을 보존하겠다는 일념아래 행정편의주의로만 일관됐다.
○주민들 불만 표출하기도
그러다가 1986년 개정된 건축조례에서 다시 이 지역을 ‘4종 미관지구’로 변경 지정하며 일부 변화를 시도했으나, 재산권 행사의 제한 등 불편을 견디다 못한 주민들의 집단적인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결국 전주시도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던지 1997년 이 일대의 한옥 보존을 포기하고 만다. 그때 규제가 풀리면서 양옥 등 한옥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옥마을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 은 1999년에 ‘전주생활문화특구’로 지정되면서 부터다. 기본 계획이 발표 되자마자, 재산권 권리가 제한된 주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전주한옥마을의 지구단위 계획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전북대 모교수의 경우 주민들의 시비와 협박에 못 이겨 일상생활이 어려웠다고 실토할 정도였다.
○관광객 1천만명 넘어선,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전주한옥마을이 관광지로 부상하게 된 것은 2002년 전주월드컵이 치러지면서 이다. 전주시는 전주월드컵을 관람하기 위해 전주를 찾은 관광객들을 위해 전주한옥마을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전주시는 태조로 등 전통문화거리를 조성하고, 전주한옥생활체험관, 전통문화센터, 공예품전시관 등 전통문화시설을 갖추게 된다. 700여채의 전통한옥이 입소문을 타면서 한옥마을에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2008년을 기점으로 대규모 인파가 찾아와 원주민들은 물론 전주사람들도 깜짝 놀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