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되지 않은 권력과 소유의 민주주의
우리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직접 선거로 뽑는다. 그러나 정작 일자리나 우리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재벌 총수는 국민이 선택할 수 없다. 어디에 공장을 세울지, 어떤 사업을 접을지, 노동자를 얼마만큼 고용할지 결정하는 권한이 극소수에게 집중돼 있다. 그래서 재벌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들 한다.
2023년 기준 4대 기업집단의 매출은 국내총생산의 40.8%에 달했다. 지난 5년간 매출은 25%나 늘었지만, 고용 증가폭은 약 8%에 그쳤다. 기업이 성장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그만큼 늘지는 않았던 셈이다. 결국 기업의 규모뿐 아니라 고용과 이익배분의 양상도 함께 지켜보아야 할 대목이다.
재벌을 견제하는 제도들은 여러 차례 후퇴를 거듭했다. 예컨대 계열사가 다른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는 규모를 제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는 1998년 폐지됐다가 잠시 부활했으나, 2009년에 다시 사라졌다. 계열사들이 서로 돌아가며 상대방 주식을 보유하는 ‘순환출자’ 역시 2014년 이후 신규는 막혔지만 기존의 연결고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26년에 내놓은 분석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89개 기업집단의 총수 일가가 직접 보유한 지분은 평균 3.5%에 불과했으나, 계열사를 통한 내부 지분율까지 합치면 61.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 지분이 모두 총수 일가의 개인 재산은 아니지만, 계열사 사이의 복잡한 주식 보유 구조를 활용하면 명목상 지분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재벌의 성장은 국가의 지원과도 밀접하게 얽혀 있다. 해방 이후 일제로부터 넘겨받은 자산을 헐값에 인수하고,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는 등 각종 특혜를 누렸다. 오늘날의 재벌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 나라에서 사업을 벌이면서 세계 금융자본과도 연결돼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가의 법과 제도, 각종 지원에 기대고 있는 구조다.
이렇다 보니 ‘재벌을 국가가 운영하는 국민기업으로 만들자’는 목소리만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단순히 국가가 기업을 소유하는 ‘국유화’ 역시 마찬가지다. 관료들이 모든 결정권을 쥐고 노동자는 지시에만 따르는 구조라면, 결국 노동자의 처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소유의 민주주의’는 노동자와 시민이 기업의 소유와 운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개념이다. 생산할 품목과 이익의 배분 방식을 모두가 함께 결정하자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민주주의는 주로 사기업 중심의 경제에 규제와 복지를 더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반면, 민주사회주의는 공공 소유·협동조합·노동자소유를 확대해 소유구조 자체를 바꾸고자 한다. 공장이나 토지 같은 생산수단을 사회의 필요에 맞춰 소유·운영해 보자는 것이다.